카드사들이 핀테크사와 휴대폰제조사의 간편결제 서비스에 대응해 선보인 '오픈페이'의 영향력이 좀처럼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올해로 출시 2년째지만, 참여사가 적고 사용 편의성이 떨어져 소비자들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탓이다.

반면 핀테크사는 간편결제 사용처를 확대하고 휴대폰제조사와 손을 잡고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또 얼굴 인식을 통한 결제 등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면서 편의성 확대에도 힘을 쏟는 모습이다.

금융사 '자체 페이' 이용 비중 줄어드는데

7일 한국은행의 '2024년 상반기 중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각종 페이 등 간편지급?간편송금 서비스 이용 규모는 일평균 939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했다. 이용규모는 2971만건으로 13% 늘었다.

간편지급 서비스 제공업자별 이용 비중을 보면 전자금융업자가 49.6%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뒤이어 휴대폰제조사가 25.3%, 금융사가 25.1%로 집계됐다.

전자지급서비스는 지난 2015년 3월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폐지 이후 비밀번호, 생체 정보(지문·얼굴) 등 간편 인증수단을 이용한 지급 및 송금 서비스를 의미한다. 간편지급은 지급카드의 정보를 미리 등록하고 거래 시 비밀번호나 얼굴, 지문 등 간편인증수단을 이용해 구매대금을 지급하는 서비스다. 소비자들에게 간편결제로 불리는 서비스가 간편지급에 해당한다.

휴대폰제조사의 간편결제 이용 비중은 2022년 상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2년 연속 증가했지만, 이 기간 금융사들의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는 이용 비중이 감소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쿠페이 등 전자금융업자 비중은 2023년 상반기엔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으나, 지난해 상반기엔 소폭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존재감 희미한 '오픈페이' 연합

카드사들은 지난 2022년 12월 오픈페이라는 연합전선을 구축해 핀테크·휴대폰제조사에 대응하려고 했지만,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픈페이란 하나의 카드사 앱에 여러 카드사의 카드를 등록해 결제할 수 있는 간편결제 서비스다.

예를 들어 KB국민카드의 앱인 'KB페이'에서 신한카드나 하나카드를 등록해 결제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주로 사용하는 카드사 앱에 본인이 소유한 다른 카드까지 간편결제 수단으로 등록해 소비자들이 하나의 앱에서 다양한 카드로 결제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현재 오픈페이 서비스를 운영하는 곳은 국내 카드사 9곳(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비씨·NH농협카드) 중 6곳(신한·KB국민·하나·롯데·비씨·NH농협카드)이다.

오픈페이 서비스를 개시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존재감은 미미하다. 소비자들이 한 카드사 앱에 다른 카드사의 카드를 등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게다가 카드를 등록하더라도 온라인 결제는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사용처가 오프라인에 한정된다는 불편함도 있다.

핀테크는 오프라인 침투 '총력전'

그 사이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토스페이 등 핀테크사들은 오프라인 결제처를 공격적으로 늘렸다.

네이버페이는 2020년 11월 BC카드와 제휴해 오프라인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지난해 3월부터는 삼성전자와 제휴해 삼성페이를 활용한 네이버페이 결제를 도입했다. 카카오페이 역시 지난해 4월부터 삼성페이, 제로페이를 연동해 오프라인 결제처를 확대했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가 삼성페이와 협력관계를 구축한 것은 QR코드 결제 방식의 한계 때문이다. QR코드 결제 가맹점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마그네틱보안전송(MST) 결제 방식인 삼성페이보다 가맹점이 적고 편의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시장의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선 휴대폰제조사와의 제휴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토스의 경우 최근 얼굴 인식으로 결제하는 '페이스페이'를 선보였다. 페이스페이는 현재 CU와 GS25 등 토스플레이스의 전용 단말기를 갖춘 편의점 등에서만 지원되며 상반기 중 세븐일레븐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한다.

그 때 했더라면

카드업계가 결제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전환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 모바일 카드 등 간편결제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집적회로(IC)카드 단말기에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능을 탑재하자는 의견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당시 하나카드와 비씨카드는 세계적 추세와 장기적 관점에서 NFC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씨카드의 경우 카드를 스마트폰에 갖다 대는 방식으로 모바일·온라인 쇼핑몰에서 결제할 수 있는 '탭사인(TapSign)'이라는 서비스도 내놨다. 스마트폰의 NFC 기능을 활용해 본인인증과 결제를 지원하는 것인데, 결제 과정에서 스마트폰이 카드단말기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신한카드와 삼성카드 등은 단말기 제조 가격만 올라가고 일부 카드사의 인프라만 확충해 주는 것이란 이유로 NFC 기능 도입을 반대했다. 또 바코드나 QR코드로 간편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NFC 단말기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QR결제 표준화 역시 카드사들의 주도권 싸움에 진행이 더뎌졌다. 이미 2018년 10월 비씨카드가 업계 최초로 국제결제표준 EMV 규격의 QR코드 결제 서비스를 도입해 운영해 왔지만, 카드사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비씨카드의 QR규격 대신 새롭게 공통 QR 규격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국 카드사 QR 규격 통합은 지난해서야 완료됐다.

"경쟁 밀린 것 아냐" vs "아직도 근시안적 생각" 

카드사들이 간편결제 시장에서 고전하게 된 이유는 주도권 싸움에 몰두하다 시기를 놓친 탓이다. 뒤늦게 오픈페이, QR결제, 자체 페이를 들고 나왔지만 소비자들을 모으는 것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에서는 애플페이 도입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특히 신한카드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애플페이 관련 개인정보 제공 약관이 유출되며 출시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카드사들은 오픈페이나 QR결제, 자체 페이에 더해 애플페이까지 도입하려는 것은 결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는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결제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결제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페이나 애플페이 도입은 결제 서비스의 커버리지를 넓히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며 "자체 페이나 오픈페이가 간편결제 경쟁에서 밀렸다는 시각보다는 소비자들의 결제 접점을 늘려 휴대폰제조사의 페이 서비스와 상호 보완재로써 작용하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페이 서비스 확대를 단지 '보완재'로 보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언젠가는 실물 카드가 '구식'이 될 수 있다"며 "이미 젊은 층은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의 선불 충전금으로 용돈을 받고 삼성페이나 애플페이로 결제하는 것이 익숙한 세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이미 핀테크사들은 30만원 한도의 소액후불결제 서비스를 영위하고 있고 이 금액 한도가 높아지는 것은 시간문제다"라며 "신용카드사가 은행의 역할만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카드사가 업의 정체성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합심해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