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미국발 관세 폭탄에 기업 자금 지원을 결정했지만 건전성 문제가 남아 고민이 깊다. 올해 시중은행들은 밸류업 강화 차원에서 기업대출을 조절해 왔다. 당장 급한 불은 끄는 게 맞다는 판단이지만 그러면서도 남은 기간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에는 골머리를 앓게 됐다는 평가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7일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합산 36조원 규모의 기업 지원을 결정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에 대출을 내주고 특별금리우대를 제공하는 식이다. ▷관련기사: 미 수출액 10% 하락 '충격파 막아라'…은행권, 기업 긴급지원(2025.04.07)
지난 3일 미국이 우리나라에 상호관세 25%를 부과키로하면서 금융권에서는 대미 수출액이 이전보다 10% 안팎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기업 매출이 줄어들면 대출상환 능력 또한 악화할 수 있다. 리스크가 높아진다고 판단하면 은행은 대출금리를 높이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기업 지원이 우선인 만큼 대출 문턱을 높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기업대출이 전년 대비 증가하면서 지난해 말 4대 은행의 위험가중자산은 합산 849조원을 넘어섰다. 전년 대비(약 778조원) 10% 가까이 불어난 수치다. 위험가중자산은 은행의 자본 적정성 지표인 CET1을 좌지우지한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CET1은 보통주 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눠서 구한다. 분모인 위험가중자산이 커질수록 CET1은 낮아지는 구조다.
4대 은행 CET1은 지난해 3분기 13.34%에서 4분기 13.07%로 떨어졌다. 위험가중자산이 더 늘어난다면 12%대로 하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500원대를 눈앞에 둔 원·달러환율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환율 등락에 대해선 은행이 손 쓸 수 없으니 기업대출이라도 조절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탄핵 선고 앞두고 '미 관세폭탄'…은행권 '산업 영향·자본비율' 촉각(2025.04.03), 탄핵정국에 대기업도 바짝 몸 사렸다…은행 기업대출 5년 만에 '뚝'(2025.04.02)
은행장들이 직접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9일 국민의힘과 시중은행장들이 만난 자리에서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산업생산과 관련된 대출에 한해 자본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BIS 자본 규제 중 산업생산 대출에 대해서는 위험가중치를 낮춰달라는 뜻이다. ▷관련기사: 국민의힘 만난 은행장들 어떤 건의했나 들여다보니(2025.04.09)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들이 관세 부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원활히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자본 규제 관련 인센티브 부여 방안을 검토하겠다"고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