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3시30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2번 출구 앞 미빌딩 벤치. 흐린 날씨에도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신한금융에 돈을 맡긴 자산가 고객들에게 부동산 투자를 제안하는 은행 부지점장급 프라이빗뱅커(PB), 기업고객 전담역(RM)들이다. 40대부터 50대까지 잠실, 분당, 판교 일대 직원들이 모였다고 한다.

신한은행과 증권을 아우르는 자산관리 전문가 팀인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Shinhan Premier Pathfinder)'가 연 '신한 PB-RM 부동산 아카데미'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아카데미는 부동산 이론 학습부터 실제 상권 임장으로 이어지도록 구성됐다. 이번이 3번째인데, 현장답사는 항상 용리단길로 온다. 일행 중에 몇몇은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벌써 몇번째 참석이냐? 이제 하산하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용리단길 핵심 거점, 매물·개발·거래사례, 상권 분석 등이 담긴 43페이지 분량 아카데미 자료를 냉큼 받아 챙겼다. 집 한 채 마련하기도 벅찬 신세지만 부자들이 소개받는 부동산 투자처는 어떤 곳인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지 궁금했다.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인 그들만의 세계를 슬쩍 들여다 볼 기회랄까. 은행원들 사이에 섞여 임장을 함께할 기회를 얻었으니 이도 행운으로 느껴진다.

전문가 임장 뭐가 다를까?

임장을 이끄는 우병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부동산 전문위원이 용산의 역사와 지형에 대해 5분 정도 브리핑을 진행했다. 지역 역사를 파악하는 게 부동산 투자 판단 핵심 기준이라서다. 과거 개발이 멈춘 이유나 부지 활용 맥락을 이해하면 앞으로 변화 가능성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 전문위원은 "(사통팔달의) 용산 일대는 고려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돼 온 곳으로, 일제강점기 적산가옥 등 역사 흔적이 다수 남아 있다"고 했다. 군사적 활용도가 높은 탓에 미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었고 각종 규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외국 거리에 온 것 같은 느낌이 젊은층 감성을 자극해 지역 상권 활성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신한은행 공채 출신인 우 전문위원은 부동산자문센터 팀장,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을 거쳐 현재는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부동산법을 공부한 법학박사이자 세무사로, 부동산 세금 특화 자문이 그의 전문분야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용리단길에서 일본어 간판을 내건 식당과 선술집 모습. /사진=김희정 기자 @khj

신용산역과 삼각지역 사이에 위치한 용리단길은 골목마다 개성있는 음식점과 카페 등이 들어서며 MZ세대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이다. 2017년 K뷰티 주역인 아모레퍼시픽 사옥이 들어선 뒤 6000명에 달하는 회사 임직원들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상권이 형성됐다. 2021년 K팝의 상징인 BTS 소속사 하이브가 용산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듬해 대통령실까지 자리 잡으면서 유동인구가 확 늘었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용리단길이 위치한 한강로 일대의 유동인구(골목 기준)는 13만7159명으로 집계됐다.

그래서일까. 용리단길은 최근 2년 동안 전국에서 임대료가 가장 가파르게 올랐던 상권 중 하나로 꼽힌다. 외국인을 비롯한 젊은층의 최신 소비 트렌드를 체험하고, 상업용 부동산 투자 감각을 기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동행에 함께한 하나래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부동산 투자를 고려할 때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을 은행원들이 먼저 배우자는 것이 이번 부동산 아카데미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SNS 진심인 MZ 파악해야

쌤쌤쌤, 테디뵈르하우스 관련 SNS 게시물 캡쳐/그래픽=비즈워치

이날 임장루트는 디저트 카페 '서울앵무새', 테라스 카페 '인바이티드', 크로아상 전문점 '테디뵈르하우스', 이탈리안 레스토랑 '쌤쌤쌤', 베트남 음식점 '효뜨'등 특색 있는 요식업이나 카페들이 주를 이뤘다. 인스타그램·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 게 일상인 젊은 소비자들이 '자랑할 만한 경험을 만들어 줘야한다'는 게 요지다. SNS 인증에 진심인 MZ들은 핫스팟엔 스스로 찾아와 지갑을 연다. 오픈런(개장과 동시에 매장으로 뛰어들기)도,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까지 폐가로 방치돼 있던 한 주택 부지는 '모닝사이드 카페'로 리모델링되며 이 같은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외면받던 언덕 위 폐가가 기꺼이 올라가 커피를 마시고 싶은 곳이 됐다. 인생샷 찍기 안성 맞춤인 그리스풍 계단이 손님들을 유혹하면서다. 이런 상권을 미리 발굴해 고객에게 제안하는 능력이 결국 자산관리 차이를 만든다는 걸 내포한다. 우 전문위원은 앞장서 걸으며 "실제로 상권이 어느정도 형성되면 타로·사주 카페, 인생네컷과 같은 셀프사진관 등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업종들이 빠르게 유입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고 했다. 

폐가로 방치돼 있던 부지를 리모델링 한 모닝사이드 카페./사진=김희정 기자 @khj

신민아 주차장 지나니…

배우 신민아가 100억원대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일명 '신민아 주차장'을 지나 신한금융 부동산 컨설팅 조직이 '잭팟'을 터트린 사례도 들을 수 있었다. 2015년 신한금융 PB센터 고객은 용리단길 메인 거리에 위치한 149평 규모 부지를 평당 5200만원, 총 78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당시엔 지금처럼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해당 부지는 6개월 이상 공실 상태가 지속됐다. 불만을 품은 고객의 항의가 이어졌고 신한금융 부동산팀이 임차인 유치에 나섰다.

배우 신민아가 보유 중인 주차장 부지의 2012년(위), 2024년 모습. 네이버 지도 캡쳐./그래픽=비즈워치

내부 거래처였던 유명 식당과 접촉해 임대료를 조율했고 설득 끝에 입점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우 전문위원은 "점차 상권이 발달하면서 현재 이 부지 시세가 약 250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와!"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투자 이후 리스크까지 함께 관리하며 10여년 만에 3배 이상 이익을 올려준 셈인데 PB들에겐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동행한 신한금융 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일화였다. 

임장 마지막은 넓은 단독주택을 개조해 카페로 만든 '옹근달 카페'였다. 대략 1시간30분에 걸친 도심 산책에 목도 마르고 다리도 뻐근했다. 참가자들은 부동산 아카데미팀이 미리 준비한 음료를 마시며 우 전문위원과 자유롭게 질의응답을 주고 받았다. 아카데미에 참석한 한 40대 직원은 "전날 4시간가량 부동산 거래 사례, 공법, 상권 흐름 등을 집중 교육받았다"면서 "은행 창구에서 접하기 어려운 상권 변화와 매물 정보를 직접 발로 뛰며 배우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사내 호응도가 높다"고 했다.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는 자산관리 어벤저스팀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투입해야 할 돈의 단위가 다르다 보니 일반인은 감히 투자 꿈도 못꾼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부자들에겐 현재진행형이다. 대다수에겐 우울한 얘기지만 부익부 빈익빈이다. 돈이 더 많은 돈을 번다. 이것이 금융 기자의 생애 첫 전문가 임장 투어 평가다. 이날 상업 부동산 가치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는 확실히 배울 수 있었다. 기초 수준이지만 기사를 읽은 누군가는 기회를 잡을지도 모른다. 부디 행운이 찾아오길.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는 2024년 7월에 출범했다. 투자전략, 상품, 세무, 부동산, 상속·증여, 자산배분, 투자은행(IB) 등 각 분야별 최고 베테랑들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이다. 초고액자산가(300억원 이상 부자)들에게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한다. 고객 니즈가 많은 세무, 부동산, 글로벌 자산배분 등 전반적 자산관리 과정을 두루 살펴주는 주는 식이다. 

지난해 신한금융의 비이자이익은 3조2575억원으로, 전년 대비 5% 줄었다. 주요 원인은 보험 부문 이익이 12% 감소한 데 있다. 다만 비이자이익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수료이익은 2.6% 늘어나며 실적 하락을 일정 부분 상쇄했다. 자산가 대상 서비스를 강화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성과가 수수료이익 증가에 영향을 줬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