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국내외 경기 침체 우려가 재차 불거졌지만, 여전히 높은 원·달러 환율과 가계부채 증가 우려 등으로 금리에 섣불리 손대기 어려웠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한국은행

17일 한은 금통위는 이날 오전 통화정책 방향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연 2.75%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11월, 올해 2월 세 차례 0.25%포인트 인하한 이후 숨고르기에 나섰다. 그간 경기부진 대응을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끌어내린 만큼, 한 차례 쉬면서 정책 효과를 가늠하고 추가 인하 여력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 상황만 보면 기준금리 인하가 상수다. 지난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낮아진 뒤 국내외 경기 부진 우려가 확대됐다. 미국의 고율 관세에 따른 수출 타격과 주요 교역국인 미·중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04% 중 수출 기여도(1.93%포인트)를 빼면 0%에 그친다. 우리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의미다.

한은은 2월 전망에서 올해 국내 경제 성장률을 1.5%로 예상했다. 하지만 미국의 관세 정책과 주요국의 보복조치 등을 고려할 때 5월 수정 전망에서 기존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금통위 발목을 잡은 건 환율 변동성이다. 원·달러 환율이 한 달 사이 1410~1480원대에서 출렁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등은 여러차례 환율의 특정 수준보다 변동성 확대를 더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 외환시장은 비교적 작은 대외 충격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발 무역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위험 회피 심리가 원화 및 무역비중이 높은 국가들 통화에 반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하기도 부담이다.

금리인하 시 우려되는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고민도 읽힌다. 서울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해제 및 재지정에 따른 주택매매가격 상승 조짐이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질지 여부도 지켜봐야 한다.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 재지정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다시 안정세를 찾고 있지만, 앞선 해제에 따른 대출 상황은 아직 확인 전이다.

미국의 불투명한 금리경로도 신중론에 힘을 싣는다. 미국 경기 균열 조짐에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는 높아졌지만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리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연속적인 기준금리 하락으로 미국과 금리차는 현재 상단 기준 1.7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연준이 금리인하를 서두르지 않는 만큼, 한은의 인하 입지도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었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하가 다음 금통위가 열리는 5월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관세 불안이 해소되진 않겠으나 1분기 성장률 악화 확인과 이를 반영한 한은 경제전망 하향 조정으로 인하 당위성이 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신정부 출범 이후 민생 살리기는 정당 불문 공통된 정책으로 판단하기에 추경과 금리인하의 정책 공조 또한 예상한다"면서 "올해 말 기준금리 2.25%의 기존 전망을 유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