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 요구불예금이 보름 만에 15조원 감소했다. 이달 초 글로벌 증시가 크게 요동치면서 주식 등을 저점 매수한 투자자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요구불예금이 줄어들면서 대출금리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되고 있다. 요구불예금이 많아야 은행의 대출자금 조달비용이 줄어든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요구불예금 이동이 늘고 있는데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합산 요구불예금(MMDA 제외)은 지난달 말 530조4327억원에서 이달 15일 515조2186억원으로 15조2141억원 감소했다.

요구불예금은 언제든지 입출금이 가능한 상품으로 금리는 제로에 가깝다. 이자를 기대하는 저축성보다는 아직 투자처를 정하지 못해 대기 중인 자금이다.

통상 금융시장이 불안정할 때는 요구불예금이 증가하곤 했다. 잠시 예치해 뒀다가 시장이 안정되면 다시 빠져나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예상대로라면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요즘 요구불예금이 늘어야 하는데 반대로 빠르게 줄고 있어 의외라는 평가다.

위기는 저가 매수 기회

업계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본 투자자들이 움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불안정한 시장을 오히려 주식 저점 매수가 가능한 시점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한 지난 3일 국내·외 증시는 요동쳤다. 이후 일주일 만에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증시가 반등하기도 했지만 다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이달 1일~15일 국내 증시 개인투자자들은 5조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이들은 지난 3월 코스피시장에서만 3조원 이상을 순매도했다. 미국 주식 개인투자자들도 위기를 기회로 봤다. 상호관세 발표 전후(3월25일~4월3일, 4월4일~15일) 개인투자자들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13억6033만달러에서 26억4244만달러로 2배 증가했다.

정기 예·적금 막차에 올라타기 위해 요구불예금을 뺐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현재 5대 시중은행의 1년 정기예금 및 적금 기본금리는 2.15%~2.75%, 2.1%~3.4%다. 모두 전월 대비 하락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떨어지면서 은행들도 예·적금 금리를 일제히 낮추고 있어서 지금 금리가 가장 좋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축은행 예금 금리도 2%대…'시중은행과 다르지 않네'(2025.03.26)

대출 조달 비용은 어쩌나…

은행들 고심은 깊어졌다. 저원가성 요구불예금 감소로 대출 조달 비용이 늘어나게 생겨서다. 정기 예·적금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아 대출 조달 비용을 증가한다. 은행채를 발행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부담이다. 은행채는 은행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으로 대출금리 산정의 기준이 된다. 은행채 발행이 늘어나면 통상 채권가격은 내려가고 금리는 오른다.

앞으로 모임통장과 같은 저원가성 예금을 확보하는 게 관건일 전망이다. 모임통장은 대부분 수시입출식이다. 언제든 돈을 넣고 뺄 수 있어 간편한 대신 기본금리가 연 0.1%로 매우 저렴하다. ▷관련기사: 카뱅에서만 8조…시중은행 '모임통장' 눈독 들이는 이유?(2025.02.18)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부 모임통장 상품의 경우 우대금리 등을 받으면 최대 연 2% 정도의 금리를 받을 수 있지만 정기예금에 견주면 낮은 수준이어서 저원가성 예금 확보처로 적합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