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은행권이 가산금리를 산정할 때 예금보험료 등을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조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은행권은 반대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당장 가산금리는 낮아질 수 있지만, 취약 차주에 대한 대출 거부나 각종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쪽으로 손실 보전을 하게 되면 대출금리 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는 지난 17일 제5차 본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최장 180일)와 본회의 심사(최장 60일)를 거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법 통과 시 가산금리 내릴 수밖에"

은행법 개정안은 은행이 가산금리에 각종 보험료와 출연료를 넣을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다. △지급준비금 △예금자보험법상 보험료 △서민금융진흥원 출연금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출연금 등이 포함된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으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입장 차가 커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심사에는 최장 330일이 소요되지만, 패스트트랙이 된 이상 야당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은행권에 따르면 매년 각종 출연료로 발생하는 금액은 약 3조원이다. 법안은 해당 금액의 최대 50%까지만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연간 약 1조5000억원을 가산금리에 반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금리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건 전세계적으로 없는 과도한 규제"라며 "가산금리에는 법정 출연료 외에도 여러 요소가 반영되긴 하지만, 일단 법이 통과되면 가산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산금리는 은행이 자체적으로 책정하는 금리다. 리스크, 유동성, 신용 프리미엄, 자본·법적 비용, 업무 원가, 기대이익률 등이 반영된다. 이들의 정확한 비율과 책정 기준은 업무상 비밀에 해당해 공개하지 않는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신한·KB국민·하나·우리은행의 가계대출 가산금리는 2.57~6%다.

혼란한 정세 속 급추진…'대출 거절' 우려도

민주당에선 은행권과 사실상 합의를 본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7일 본회의 전 "민주당과 은행연합회가 사실상 합의했지만 국민의힘이 특별한 이유 없이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권의 시각은 다르다. 은행연합회를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반대 의견을 냈고, 현재도 반대하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다만 조기 대선을 통한 정권 교체 등의 가능성이 있고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숨을 죽이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처벌 조항이나 출연금 비율 등에 대해 일부 개정이 이뤄지며 은행권의 의견이 반영되긴 했지만, 법안에 찬성한다고 직접 표명한 적은 없다"며 "혼란한 정세 속에서 민주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보니 더 이상 반대 의견을 내고 있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법안이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자수익 감소를 우려한 은행이 취약 차주에 대한 지원을 축소할 수 있어서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17일 본회의에서 "은행이 우대금리를 축소하고 신용이 낮은 개인이나 단체에는 아예 대출을 막아버리는 식으로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